[수사권 조정 1년] 과부하 걸린 경찰, 미제 사건 떼는 검찰…고소·고발 적체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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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1.20. 오후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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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경찰 분산 접수되던 고소·고발사건 경찰로
검찰 고소·고발 접수 20~40% 급감
검찰 미제사건은 17만건→8만건으로 줄어
고소인 처리 상황 모른채 사건 장기화 현상 심화
검찰 조서 증거능력 사라져 직접 수사 범위 더욱 축소될 듯
[연합]


[헤럴드경제=좌영길·박상현 기자] 검찰의 직접 수사를 최소한도로 축소하고,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 범위를 줄인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검찰과 경찰로 분산됐던 고소·고발 창구가 사실상 경찰로 단일화되면서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반면, 검찰은 그동안 쌓인 미제 사건을 털어내는 상황이어서 형사 절차가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점은 과제로 지적된다.

20일 대검찰청이 집계한 고소·고발 사건 접수 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고소 사건은 22만9313건, 고발 사건은 5만1250건으로 집계됐다. 월별로 편차가 있지만 전년 대비 고소 사건의 경우 40.8~54.8% 정도 급감했고, 고발 사건 역시 2020년과 비교해 20.3~44.8%로 줄어들었다.

이 수치는 경찰에서 송치한 사건도 모두 포함된다. 월별 고소 사건 접수 건수가 40~50% 정도 급감했다는 것은 단순히 검찰 접수 사건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경찰이 몰려든 사건을 제때 처리하는 데에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고소 대리업무를 맡고 있는 변호사업계의 체감 정도도 비슷하다. 한 현직 검사장은 “그동안 검찰이 인력을 투입해 하던 일을 변호사가 맡게 된다. 사건 당사자가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있느냐에 따라 차별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한다. 갑자기 고소·고발 사건이 증가한 경찰은 사건을 선별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고, 사건의 중요도나 핵심 내용을 서면으로 잘 정리하는 고소대리인을 내세운 피해자가 유리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검찰은 직접 수사 범위가 축소되고, 수사지휘권한도 대폭 축소되면서 업무 부담이 줄어든 상태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긴 검찰은 그동안 쌓인 미제 사건을 덜어내고 있다. 수사권 조정 전인 2020년 상반기 미제 사건은 8만5430건, 하반기 9만2869건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상반기에는 4만8276건, 하반기 3만2424건으로 크게 감소했다. 대검 관계자는 “사건이 없어서라기보다 직접 수사에서 송치 위주로 방향이 바뀌면서 숫자가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검 고위 관계자도 “검찰이 여유가 생겼다기보다,그동안 밀려서 못하던 걸 한 것”이라며 “경찰과는 수사지휘관계인데, 앞으로 협력관계로 적응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변호사업계에선 불만이 적지 않다. 수사권 조정업무와 관련해 외부위원회 위원이었던 한 변호사는 “고소한 지 한참 지난 사건이 경찰로 송치되고, 보완수사를 요구해 경찰로 다시 돌아왔는데 어떤 이유로 되돌아왔는지, 무슨 문제가 있어 보완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며 “왜 처리가 안 되는 것이고 고소인 측이 준비해줄 게 있는지를 문의해도 다른 급한 사건이 있어서 그렇다는 답만 들었다”고 토로했다. 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지금은 검찰이 수사지휘가 아니라 경찰에 보완수사만 요구할 수 있다. 경찰이 1차 수사 종결권을 갖는데, 검찰의 불기소 처분과 달리 경찰 단계에서 불송치로 결론이 나는 경우 고소인 입장에선 그 사유를 제대로 알지 못해 난감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성범죄 고소대리 사건을 많이 처리하는 한 변호사도 “고소한 지 1년이 넘었으면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데, 왜 처리되지 않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몰라 의뢰인을 볼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형사 사건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경찰이 자체 종결할 경우 이의 제기를 하면 된다고 하는데, 이의 제기라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법률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결국은 비용이 드는데, 돈 많은 사람이 유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더불어 검찰의 피의자 신문 조서 증거능력이 올해부터 사라진 점도 실무상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은 검찰 조서에 증거능력이 부여됐기 때문에 검사가 피의자를 불러 진술을 받는 과정이 중요했지만 앞으로는 이 과정이 법정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커졌다. 사실상 검찰의 수사 영역이 축소되는 효과를 낳는다. 다만 이러한 변화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대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조서 증거능력이 없어지면 조사한 경찰이 법정에 서게 될 것이고, 그동안 유·무죄 책임을 검사가 졌지만 앞으로는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경찰도 무죄율을 신경 쓰고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일본이나 미국처럼 검사 방에 경찰이 수시로 찾아와 사건을 논의하는 풍경이 그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로 한정됐지만 이 구분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예를 들어 경제범죄는 경제인을 수사하는 것인지, 경제적인 문제를 수사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대표적으로 다단계 범죄를 수사하다가 횡령이나 사기가 나올 경우, 정치인이 연루된 부패범죄가 발견되는 경우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인지 아닌지 모호한 사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재 수사 중인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사건의 경우 검찰과 경찰이 모두 수사 중이다. 대장동 개발사업 주요 피의자인 김만배 전 기자의 경우 검찰과 경찰 양쪽에서 모두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 50억원 수수 부분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후 보강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경찰은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을 구속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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